| 언론고시 채점해 보니... 2004/12/08 12:59
언론사 입사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부른다지요.
그런 세간의 표현을 빌자면 저는 지난 주말동안 고시 채점관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3일 금요일, 5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조선일보 수습기자 입사시험의 3단계인 편집국 평가가 있었는데, 저는 7명의 평가위원중 한명으로서 49명 응시생들이 두 차례에 걸쳐 낸 답안을 채점했습니다.
시험 방식은 기사 아이디어를 처음 제출한 뒤, 현장을 나가 취재를 한 뒤 취재메모를 제출하고, 최종적으로 그 취재내용으로 작성한 기사를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네티즌 들중에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을 듯 하고, 이번에 평가를 하면서 “요령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답안을 쓸 수 있었을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답안들이 있어서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소개할 까 합니다.
우선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은 2차,3차 관문에 해당하는 작문 혹은 기사작성 시험의 평가는 언론사 내부 사람, 좀더 정확히는 기자생활을 10년 이상 한 중견기자 혹은 논설위원들이 한다는 점입니다.
언론인들은 대학에서 학문을 하는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글을 봅니다.
10년 이상 ‘뉴스’라는 상품을 다루면서 지낸 탓에,
뉴스가 갖춰야 하는 참신성, 간결성, 명확성이라는 덕목에 따라 글을 평가합니다.
학자들은 글이 좀 길고, 난해해도 학문적 가치가 있으면 평가하지만,
언론인들은 그런 인내력이 부족합니다.
요점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글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답안들을 보니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불필요한 대화록들을 잔뜩 소개해 놓은 경우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답안은 좋은 평가를 받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자 시험은 기자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설계된 것입니다.
기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는 대체로 참신한 발상, 취재력, 문장력등을 꼽습니다.
조선일보 수습 시험를 예로 들 경우, 기사 아이디어 제출은 남들과 다른 발상을 하느냐는 것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취재 메모는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알아내는 근성과 요령이 있는가하는 취재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제출하는 기사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흥미있게 써내려 갈 수 있는 문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라서 훈련을 한다고 금방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령을 알지 못해서 자신이 갖춘 능력마저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그 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느낀 것이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취재에 앞서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취재 설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불과 5,6시간에 한 주제에 대해 취재를 마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제를 정하고 무조건 택시부터 잡아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먼저 인터넷을 뒤져 관련 정보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일별 해보고, 현장으로 달려가기 전 그 문제에 대해 전반적인 정보를 갖고 있을 곳에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경향이 있는게 사실인가”라고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취재할 문제에 대한 민간단체 혹은 그 주제에 대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전화한 통 해보면, 최소한 방향이 맞는지정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전제가 현장에 가서 흔들리면 당황하게 되고, 거리라도 먼곳에 와서 그런 일을 당하면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밧줄을 타기 전 몇차례 세게 당겨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성급하게 오르다보니 썩은 밧줄이면 중간에 난감해 집니다.
보다 중요한, 그리고 근본적인 요령은 아이디어, 취재, 기사작성의 전 과정에 걸쳐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언론사에 들어왔을 때 어떤 선배가 “기사엔 눈깔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 눈깔이 아마 포인트에 해당할 겁니다.
기사 아이디어에는 뭔가 분명한 포인트가 있어야 하고, 취재는 그 포인트를 여러각도에서 검증해 가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며, 기사작성 역시 그 포인트에 따라 골격을 세워 독자들이 그 포인트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글을 써 나가야 합니다.
가령 ‘무엇 무엇에 대한 전반적 실태를 알아보겠다’는 기사 아이디어는 구태의연할 뿐 아니라 그런 포인트로 취재해서는 잡다한 사실들을 들을 뿐, 뉴스를 포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취재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관광객들의 실태’를 알아보자는 발상과 ‘일본인들의 한국 관광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가지 사태진전이 있었다. ‘욘사마’ 열풍은 여자 관광객들에 영향을 줄 것이고, 성매매 금지법은 남자 관광객에 영향을 줄 것이다. 두 가지 영향이 다 작용할 것인가. 양쪽의 상대적 크기는 어떨까’라는 좀더 구체적인 포인트를 세우고 나면, 어디 어디를 대상으로 취재해야 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해지고 결과적으로 나오는 작품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취재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포인트를 세워놓고 그에 따라 취재원에게 질문하면 빠른 시간안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저 쉬운 예를 들자면 ‘연탄 전반에 대해 알아보자’는 생각을 한 사람과 ‘극심한 불경기는 연탄수요를 증가시켰는가’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은 단위 시간안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효율성이 전혀 다릅니다.
앞의 사람의 경우는 연탄 때는 가정을 찾았을 때 “연탄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좋은 점은 뭔가요”등 백과사전식 질문을 하는 반면,
뒤의 사람은 과거에 기름 보일러를 쓰다가 최근에 연탄으로 전환한 사람들을 찾을 것이고, 그 사람을 대상으로 “비용이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식의 꼭 필요한 질문만 할 것입니다.
이번에 취재 메모들을 보니, '도대체 이 사람이 나중에 무슨 내용의 기사를 쓰려고 이렇게 불필요한 질문을 많이 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개해 놨을까'라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 응시자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취재를 진행했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취재과정에서 원하던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취재는 그것의 결과가 나빴더라도 평가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줍니다. 평가자들도 기자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짱구를 굴렸는데 운이 나빴군”에 해당하는 경우와 “아무 생각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돌아다녔군”에 해당하는 경우는 금방 구별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답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사를 쓸 때는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루 취재한 것중 그럴 듯해 보이는 코멘트들은 아까워서 꾸역 꾸역 기사에 꿰넣는 답안들이 많은데 이것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뒷받침하는 사실인가, 아니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인가를 생각해보고 관련이 없다면 아낌없이 버려야 합니다. 기사는 ‘날씨가 추워지면 난로가 많이 팔린다’는 것이 주제인데, 같은 난로가 주제라고 ‘난로를 틀어놓고 자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덜렁 끼워 넣는 식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기사인가’라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저는 끝으로 ‘언론고시’라는 표현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고시’라는 표현이 은유(metaphor)하는 바는 ‘오랜 고생 끝에 입신양명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 가지 면에서 다 언론사 시험은 고시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시험은 사실 ‘적성검사’에 해당합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사는 특히 적성이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능력이 뛰어나도 언론은 안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언론사 시험은 그 적성이 맞는 사람을 고를 수 있게 구조가 짜여져 있기 때문에, 적성이 맞는 사람은 그다지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반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머리띠 두르고 오래 공부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기자는 되는 것은 세상 기준의 ‘출세’의 길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성공한 언론인이 될 경우 ‘명예’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런 경우에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혹시라도 언론사 시험이 신분 상승의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분들이 있다면 하루 빨리 그 착각을 접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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